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법학박사, 변호사)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남북 평화회담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인의 관심은 사상 초유의 북미회담에 집중되었다. 그러면서 북미회담의 장소와 시기에 대해 궁금한 전 세계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수시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5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6월 12일에 싱가포르에서 개최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회담이 열리기를 기대했던 한인들에게 약간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싱가포르가 왜 북미회담 장소로 최종 결정되었는지 분석해 보자.

트럼프 대통령 측에서는 경호, 통신 보안, 역사적 상징성, 이동의 편리성 등에 무게를 두고 장소를 고민하였을 것이다. 특히 이동의 편리성에는 미국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동반하는 수행원들과 기자들이 다수 포함되는데, 이번 북미회담장에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할 것을 예상할 때 회담장 가까이에 이들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갖추어진 곳을 골랐을 것이다.

역사적 상징성과 극적인 이벤트 효과 측면에서 평양과 판문점이 거론되었지만 경호 및 통신 보안, 그리고 이동의 편리성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 같다. 판문점에서 북미회담을 개최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문제될 게 별로 없지만,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지난 4월 27일 남측 경계선을 넘어 온 이후 북미 정상회담에서 또 남한으로 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사실 북미회담 장소와 관련한 협상 초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의 보좌진들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워싱턴으로 오라고 했을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일본의 아베 수상, 영국의 메이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먼저 워싱턴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당연히 김 위원장도 먼저 워싱턴으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혹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 가능성도 언급했지만, 미국 주류 언론이 트럼프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성과물 없이 트럼프가 북한을 먼저 방문한다면 언론의 비아냥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의 평양 방문은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워싱턴과 평양, 한국, 판문점이 회담 장소에서 제외되자 이제 스위스, 스웨덴, 싱가포르, 몽골이 후보지로 압축되었다. 미국은 아시아보다는 서구권인 스웨덴과 스위스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자신과 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유학했던 스위스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만약 아시아로 결정한다면 경호, 통신 보안, 상징성, 편리성 측면에서 양측 모두 몽골보다는 싱가포르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담장소가 스위스가 아닌 싱가포르로 최종 결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행 가능 거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에서 스위스 베른까지의 거리는 8,662 km이고, 싱가포르까지는 4,743 km 이다. 스위스가 싱가포르보다 약 두 배 정도 멀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전용 비행기가 노후하여 스위스까지 장거리 비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자신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스위스보다는 싱가포르가 더 유리한 장소였고, 미국측에서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동 거리로 보았을 때 싱가포르는 미국측에게 그리 탐탁치 않은 장소였다. 워싱턴에서 스위스까지는 6,594 km인데 반해, 싱가포르까지는 무려 15,528 km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의 달인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 먼 거리를 이동하기로 양보하는 대신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더 큰 것을 얻어냈다. 북미회담 장소가 싱가포르로 확정 발표된 날 새벽 2시에 북한에 억류되었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펜스 부통령 부부의 영접을 받으며 미국땅에 도착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억류된 미국 시민들을 석방하는 대신 회담 장소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싱가포르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전망을 덧붙이자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괌이나 하와이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괌과 하와이는 북한 핵미사일 공격의 대상지로 언급된 곳이었고, 특히 괌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B1, B2 폭격기가 출격하는 곳이며 괌의 에디 바자 칼보 주지사는 북한의 핵 위협이 정점에 있던 작년 8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트럼프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다. 나아가 괌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영토이면서, 동시에 과거 1979년 미중 국교정상화 이후 중국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하던 레이건 대통령이 1984년 4월 방문했던 상징성도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귀국길에 괌의 공군 기지에 들러 이제 미국땅에 더 이상 핵 위협은 없으며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점을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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