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길 변호사 (NC)
법학박사 SJD [email protected]

언론의 역할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 헌법이 언론에 대해 이렇게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 정착과 세계 평화,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친 자유는 쉽게 방종으로 변질되듯이, 견제장치가 없는 언론의 자유 역시 지나치게 남용되면서 민주주의 사회에 오히려 큰 해를 끼치는 적폐로 지목되고 있다.
흔히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고 한다. 이는 정보를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인들과 언론기관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가진 권력에 필적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입법, 행정, 사법부의 국가 권력을 견제하며 균형을 잡아야 할 언론이 오히려 특정 정당과 결탁해 정치 행위를 일삼으며 또 하나의 부패한 권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
아무리 친한 사이에서도 피해야 할 것이 정치와 종교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평소에는 관용과 양보의 태도로 보이던 선량한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정치와 종교는 현실세계와 사후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며, 우리는 그 바탕 위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해 간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비판한다면 이는 곧 그것에 기반한 나의 세상 전체를 위협하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따라서 일단 어떤 종교나 정치적 신념을 받아들이고 나면 웬만해서는 그것을 바꾸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특정한 신념 위에 쌓아올린 자신의 삶을 어리석은 것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신념 위에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아의 일부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이기에 우리의 신념을 변화시키려는 타인의 강요나 논리적 설득에 대해 다분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 문제에서 양보는 곧 자기 세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와 종교는 근본적으로 관용과 양보를 보이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아예 서로 말을 꺼내지 말자는 불문율이 생긴 듯하다.

성숙의 시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를 보게 된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다른 정당 지지자들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으며, 그들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도 정치적 신념이 다르면 서로 싸우고 반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과거 중세시대에는 종교재판을 통해 종교적 신념이 다른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공격과 차별, 박해를 가했다. 그리고 그 후 여러 세기가 지나는 동안 수많은 희생과 싸움과 토론 끝에 점점 종교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존중하자는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마치 과거 중세시대처럼 주류 언론이 여론재판을 통해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골적인 공격과 차별을 가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는 아직 미약하다.
중세에 마녀로 지목된 여성들이 꼼짝없이 붙잡혀 화형을 당하고 대중들은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듯이, 오늘날 주류 언론의 적으로 찍힌 사람들이 부당한 차별과 공격을 받아도 사람들은 그저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기만을 바라며 숨죽이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가 종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천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문제의식이 아직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 민주주의 정당정치의 역사는 미국이 기껏해야 약 200년, 한국의 경우 독재정권 기간을 빼면 겨우 몇 십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몇 세기가 지나고 충분한 데이터가 쌓인 후에는 다른 사람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개인의 선택으로 온전히 존중하는 세상이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한다.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언론
현대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만큼 민주주의 체제 속 언론의 역사 또한 짧다. 그래서 주류 언론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며 권력의 맛에 취해 있지만, 시간이 지나 국민들의 의식이 더 성숙해지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고 민주주의 제도에 더 적합한 언론 체제가 정착될 것이다.
민주주의 언론의 가장 이상적인 비율은 30:30:40이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양당정치 체제 하에서 정당 지지도는 진보:보수:중도 = 30:30:40의 패턴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언론 역시 30:30:40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30:30:40의 언론 시스템이 정착된다면 크게 보아 언론이 양대 정당처럼 50:50이 되는 셈이고, 지금처럼 주류 언론의 90% 이상이 일방적으로 한쪽 진영을 대변하는 극심한 불균형과 그에 따른 부조리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동안 언론도 함께 성장해왔다.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언론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자각하여 언론이 정도를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