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수록 더 불행해지는 사회 구조를 비판한 <미안해요, 리키> ©Cineart
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진행
parksungyoontree@gmail.com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2019)
감독: 켄 로치
주연: 크리스 히친, 데비 허니우드

83세 거장의 직구
지난 50년 동안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온 83세의 영국 거장 감독 켄 로치는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영국의 빈곤층에 대한 국가적 소외를 비판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화두를 확장하여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잠식되어가는 한 가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로 다시 돌아왔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온갖 일을 다 해봤습니다. 안 해본 일이 없지요.”
건축 노동자였던 리키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실업자가 되어 일용직을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중, 택배 회사에 개인사업자로 취직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가족들과 좀 더 안정된 삶을 꿈꾸며 택배 회사 관리자와 면접을 본다.
택배 회사 관리자는 리키에게 택배 기사는 회사와 함께 일하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이 번창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의 본질은 회사가 고용노동법을 피해가면서 모든 비용은 택배 기사가 부담하고, 보험이나 사건사고에 대한 보상 등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리키는 자율과 기회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거대 자본의 속내를 생각지도 못한 채, 당장 택배 일을 시작하려면 택배용 밴을 구입하거나 회사 차량을 빌려야 한다는 첫 번째 조건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성실한 소시민
리키의 아내 애비는 시급이 아닌 임시직 급료를 받으며 일하는 방문 간병인이다. 그녀는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을 정성껏 간병하고 싶었지만 회사의 정책상 고객과의 감정교류는 금지되어 있었고,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했다.
애비는 하루에 여러 명의 환자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차가 필요했지만, 리키가 택배 일을 시작하려면 밴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의 차를 팔아 계약금을 마련해주고 자신은 버스로 이동하면서 점점 피로에 지쳐간다.
한편 개인사업자로 택배 일을 시작한 리키의 근무여건도 만만치 않다. 배달 사고가 생기면 100파운드의 벌금과 벌점을 받으며, 자신이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자비로 대체기사를 구해야 하고, 실시간 배송 추적을 하는 스캐너의 감시 아래 늘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했다.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 차에 소변통을 가지고 다니고, 심지어 십대 아들인 세브가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 부모를 호출해도 학교에 찾아갈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방치된 아이들
모범생이었던 아들 세브는 점점 학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길거리 벽에 그래피티(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래피티에 필요한 스프레이를 사려고 자신의 코트를 팔고 심지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경찰서에 잡혀간다. 학교에서는 정학 당한 세브에게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라고 하지만, 그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아들 세브의 변화는 무방비하게 방치된 사춘기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대물림되는 가난과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무력감과 패배감, 그리고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딸 라이자 역시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늘 자기 몫을 척척 해내던 똑똑한 아이였지만 바쁜 부모의 본의 아닌 방치와 빈번해진 불화 때문에 불면증과 야뇨증까지 생긴다.

열심히 사는데 왜 이래…
리키와 애비는 빚을 갚고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고 내 집을 마련하는 보통 사람들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리키는 하루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하며 그 꿈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었고 가족들은 그의 빈 자리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하루하루의 생존이 우선일 때 간과하기 쉬운 정서적 빈곤감은 결국 모든 가족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리키는 강도를 당해 배달할 물건들을 빼앗기고 구타당한 후 소변통에 있던 소변 세례까지 받게 된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택배 회사 관리자가 리키에게 벌금과 스캐너 값 1,000파운드를 물어내라며 전화를 한다.
일하다가 다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손해배상 문제만 따지고 드는 관리자에게 애비는 전화기를 빼앗아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는 사람을 돌보는 사람이고, 원래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며 흐느낀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간을 목적 자체인 존엄한 존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시킨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을 그저 ‘인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누군가 일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면 대체인력을 구해 다시 그 시스템을 돌릴 뿐이다. 지극히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 정상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50년 동안 영화로 세상과 맞서며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온 켄 로치 감독은 지난 2014년 <지미스 홀(Jimmy’s hall)>’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2019년 <미안해요, 리키>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평범한 개인과 가족들이 불합리한 제도에 이용당하고 파괴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리라.
강도 사건으로 빚이 더 늘어난 리키는 가족들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쪽 눈과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택배 일을 하러 나가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어떤 상황에서든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돌파구가 없는 우리의 현실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장면이다. 리키는 그 몸으로 택배를 배달하며 집주인이 없을 때마다 ‘Sorry, We Missed You’ 스티커를 붙여 놓고 오지만, 정작 리키를 놓치고 그리워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이었다.
이 영화는 리키와 그 가족의 힘겨운 삶을 대상화하지 않으며 직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의 붕괴 원인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불편하면 분노하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철저한 분노’라고 했던 한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르며, 세상의 모든 리키들에게 말하고 싶다.
“미안해요, 리키. 그리고 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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