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하나와 고양이를 안고 뉴욕 밤거리를 떠도는 무명가수 르윈 ©latimes.com
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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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2013)
감독 : 코엔 형제
주연 : 오스카 아이작,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코엔 형제의 영화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코엔 형제 감독이 1960년대 포크 음악이 부흥했던 시대의 뮤지션인 데이브 반 롱크에서 영감을 얻어 재창조한 인물 르윈 데이비스의 일주일 간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한 농담과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뉴욕 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노미네이트 및 전미 비평가협회 각본상, 고담어워즈 작품상, 뉴욕, 보스톤, LA 영화 비평가협회 최우수 음악상 등을 석권했다.

무명가수 르윈
포크의 본고장,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를 돌며 노래하는 무명가수 르윈 데이비스는 어느 날 밤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낯선 남자에게 영문도 모른 채 두들겨 맞는다. 집이 없어 밤마다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신세를 지는 그는 그날 밤 친구 골파인 교수의 집에서 묵는다. 다음날 늦은 아침 르윈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찰나 골파인의 고양이가 뛰어나오고 문은 자동으로 잠기고 만다. 졸지에 고양이를 떠안게 된 르윈은 한 손에 기타, 다른 한 손엔 고양이를 안고 일주일 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불운의 아이콘
뉴욕의 시린 겨울에 코트 하나 없는 르윈은 자신이 소속된 레코드사 사장을 찾아가 돈을 청해보지만 거절당하고, 그날 밤을 신세지기 위해 자신의 옛 애인이자 지금은 친구의 아내가 된 진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그런데 르윈을 보자마자 진은 자신이 임신을 했는데 르윈의 아이인지 짐의 아이인지 모른다며 피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머저리라고 욕을 퍼붓는다. 설상가상으로 르윈은 데리고 있던 고양이마저 잃어버린다.
친구 짐의 도움으로 녹음 세션의 보컬과 기타로 참여하게 되지만 당장 급한 진의 낙태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두가 히트를 예감하는 노래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고 200불을 받아온다. 그리고 진의 수술날짜를 예약하러 옛 여자친구 다이앤의 낙태를 담당했던 의사를 찾아가는데, 다이앤이 나중에 마음을 바꿔 자신의 아이를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한편 잃어버린 고양이를 길거리에서 발견한 르윈은 그 고양이를 골파인에게 데려다주는데 골파인의 부인이 자기 고양이가 아니라며 비명을 지른다. 졸지에 르윈은 이름도 모르는 길고양이까지 떠맡게 된다.

What are you doing?
날마다 뒤죽박죽 온갖 불운이 겹치던 르윈은 시카고에서 음악계의 거물 버드 그로스맨이 개최하는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카고로 향한다. 르윈은 그로스맨 앞에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지만 그로스맨은 “돈이 안 되겠어.”라며 솔로 대신 자신이 키우는 그룹에 들어오라고 제안한다.
그로스맨의 말은 음악계에 오래 몸담은 거장의 진심어린 현실적 조언이었지만, 르윈은 그의 조언을 무시하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왜 성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느냐며 질책하는 진을 속물 취급한다.
문제는 르윈이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숭고한 예술혼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 중간 중간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공공장소에서 르윈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르윈의 자의식에 의한 내적 관찰을 상징한다. 이때 르윈이 느끼는 소소한 모욕감은 그의 자조적 반응이며 시카고로 가는 길 화장실 벽에 써 있던 “What are you doing?”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모습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대화할 때 자신이 먼저 말을 끝내 버리거나 동문서답하거나 혹은 무의식 중에 가학적인 말을 내뱉는 것은 르윈의 내면세계가 혼자만의 망상으로 가득함을 보여준다.

무한반복의 삶
버드 그로스맨과의 만남 후 르윈은 음악을 접고 예전의 선원생활로 돌아가려 하지만 이 또한 불운의 연속이다. 팔리지 않는 자신의 음반과 선원증이 들어 있던 박스를 챙기라는 여동생의 잔소리에 그냥 버리라고 홧김에 내지른 말이 화근이 되어 선원증은 사라지고, 전 재산을 털어 신청한 선원 접수비는 환불 불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진창에 젖은 신발을 끌고 찾아간 곳은 진의 아파트. 그녀의 권유로 ‘가스등 카페’에서 공연을 마치고 나오다가 르윈은 낯선 남자에게 다짜고짜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친구 골파인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이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에 재연되는 것은 르윈이 ‘영원한 회귀’의 삶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만의 좁은 궤도를 무한히 반복하며 끊없이 돌고 도는 삶의 속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책임감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제멋대로이지만 노래할 때 만큼은 완벽하게 매력적인 모순적인 캐릭터 르윈 데이비스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그의 반복되는 불운의 원인을 짐작하지만, 정작 르윈 자신은 자기 내면의 결핍을 인식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게 될지 의문이다.

인생의 비애
삶의 변화란 우주 인력에 순응해 만든 자기만의 궤도를 이탈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착화된 운동성에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에 길들여진 채 살아간다. 영화의 엔딩을 다시 처음부터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로 연결해 놓은 코엔 형제는 그저 그 궤도를 순행하는 것이 보편적 삶의 비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스스로 집을 찾아 돌아온 골파인의 고양이 이름이 율리시스인 것을 알고 르윈이 놀라는 장면은 사뭇 흥미롭다.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율리시스와, 상대의 내면과 무의식을 관찰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속 율리시스의 시선은 르윈의 지난 일주일 간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코엔 형제는 이를 르윈의 표정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고 있다.
천재 감독 코엔 형제와 헐리우드 영화음악의 거장 티 본 버넷이 만들어낸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출연 배우들이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 1960년대 라이브 카페의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르윈이 공연을 마친 뒤 다음 무대에 청년 밥 딜런이 등장하는데, 실제 밥 딜런의 미공개곡인 ‘Farewell’이 엔딩 크레딧에서 최초로 공개되어 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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