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윤
미주 우리 사는 세상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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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감독: 테렌스 맬릭
주연: 브래드 피트, 숀 펜, 제시카 차스테인

영상철학자의 대서사시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삶의 근원과 의미, 우주와 생명의 역사, 철학과 종교에 대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철학적 명상이 담긴 작품이다.
맬릭 감독은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어느 날 동료 교수의 영화 수업을 수강하다가 영화에 입문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는 영상철학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감독생활 40년 동안 단 7개의 작품을 내놓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에는 할리우드의 많은 톱스타들이 출연하지만, 정작 자신은 언론이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린다. 심지어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가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대리인을 통해 수상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이 영화는 구약성경 욥기 38장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기 38:4, 7)
중년의 건축가 잭 오브라이언은 어린 시절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19살 동생이 베트남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어머니는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하며 흐느낀다. 그 뒤로 잭은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고 삶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불편한 통화를 마친 잭은 문득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곳
에덴동산의 ‘생명나무’(트리 오브 라이프)를 상징하듯 큰 떡갈나무가 있는 잭의 집에는 사랑 가득한 어머니와 함께 맨발로 풀밭을 뛰어노는 ‘행복한 시간’과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견디는 시간’이 공존한다.
맬릭 감독은 포근한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주는 어머니와 가족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통해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생명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이원론적 우주의 원리가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춘기에 접어든 잭은 친구들과 사소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스스로 죄의식을 갖기도 하며, 엄마를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갈등 속에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잭의 성장통을 통해 맬릭 감독은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의 부재
이어 잭은 사고로 익사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인간의 고통과 신의 부재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화상으로 피부가 일그러진 친구, 시내에서 우연히 본 장애인들과 죄수들,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았던 자신의 유년 시절과, 19살의 나이에 전사한 동생의 소식을 들은 선하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하늘을 향해 무력하고 슬프게 읊조리던 독백을 떠올린다.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맬릭 감독은 신에 대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품은 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의 공간으로 홀연히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문제적 장면이기도 한 17분간의 시퀀스는 우주의 창조와 빅뱅으로 인한 지구의 탄생, 용암과 바람, 유기체로부터의 생명체 출현, 공룡들의 시대, 그리고 인류의 진화까지 신비하고 광대한 ‘생명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관객들은 스크린 안에 펼쳐지는 초자연적인 장엄한 비주얼과 웅장함으로 벅차오르는 음악이 엮어내는 대서사시적 영상에 압도당한다.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맬릭 감독이 보여주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역사가 우리 삶의 고통과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구약성경이 나오는 선한 욥과 잭의 어머니가 고통 중에 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한 욥기의 성경구절에 힌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
잭이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수없이 많은 철새떼의 나선형 군무 역시 또 다른 힌트가 된다. 신이 설계한 자연의 질서와 섭리 안에서 저 광활한 우주의 탄생과 소멸은 물론, 인간의 삶 또한 출생과 죽음을 지속하고 있으며, 선과 악,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고, 불확실성과 부조리와 대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의 눈으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는 신의 뜻을 전부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생은 사랑
그러나 맬릭 감독은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공룡의 시대 장면에서 포식자 공룡인 벨로키랍토르가 죽어가는 초식공룡 파라사우롤로푸스를 발견한다. 먹고 먹히는 동물의 세계에서 초식공룡을 잔인하게 잡아먹을 줄 알았지만, 포식자는 쓰러져 있는 동물을 가련한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사라진다. 맬릭 감독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예상치 않게 자비심을 보이는 공룡을 통해 인간 세상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잭의 아버지는 “세상은 싸움”이라고 믿었으며 아들에게 “너를 강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하고 가정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몰랐다며 잭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잭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가 사실은 그의 불안과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지배하던 아버지의 그늘을 걷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은 상상한다. 하늘과 맞닿은 어느 해변을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 중년의 잭과 어린 잭, 그리고 두 명의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미소를 띄고 서로를 보듬으며 걷고 있다. 어린 시절 잭의 어머니가 말했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거란다.” 그렇게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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