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혐오 범죄를 끝내기 위해서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KOREAN LIFE
이준길 변호사 (NC)
법학박사 SJD
joonkleedr@gmail.com

혐오 범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증오라는 전염병도 동시에 퍼져 나가 우리 사회의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아시아계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주 법무부에서 지난 28일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혐오범죄가 전년도 대비 32.6% 증가해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특히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89건에서 247건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달 LA 한인타운의 중심가에서 훤한 대낮에 한 아시안 남성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낮 1시 45분경 식당 앞에서 덩치 큰 흑인 남성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시아계 남성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렸다. 피해 남성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다행히 지나가던 여성이 911에 전화해 구급차가 도착했고,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해 남성은 타이완계 아시안으로 미 해군으로 5년간 복무한 베테랑이지만, 휴대폰을 보는 동안 불의의 공격을 당했다. 그는 “치료를 받고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 감시 카메라에 담긴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가해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폭행으로 코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고, 알 수 없는 공격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샬롯에서도 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재물손괴 등의 피해가 발생해 애틀랜타 총영사관에서 수사당국에 피의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순찰 강화 등의 조치를 요청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AANHPI Heritage Month(아시아계 미국인 및 하와이·태평양 도서 원주민 유산의 달)를 맞아 한국의 세계적인 K-Pop 그룹인 BTS를 백악관에 초대해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에 대해 논의하며, 그들의 입을 통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급증하는 아시안 혐오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각 도시의 경찰서와 보건 당국에서 혐오범죄 대응 및 신고 방법을 안내하고, 한국 영사관과 시민단체에서도 한인 혐오범죄 피해 핫라인을 운영하고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종 혐오
혐오 범죄란 가해자가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 특정 집단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 피해를 가하는 범죄 행위다. 혐오 범죄의 형태는 욕설, 신체적 폭력, 위협적인 전화, 개인 소유물 파손 등이 포함되며, 죄의 경중에 따라 카운티 교도소에 최고 1년 징역의 처벌이 가능하다.
현대 역사에서 유럽이 아시아를 식민지배하면서 많은 백인들의 무의식에 유럽중심주의와 백인우월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동안 인종 혐오는 주로 백인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많은 흑인들이 아시아인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자행하는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아시안 혐오 범죄는 흑백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같은 소수민족으로 백인들에게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온 흑인들이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똑같은 인종 혐오 범죄를 자행하는 현실에 큰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코로나 유행 이전인 지난 2019년 미국 법무부가 발행한 2018년 범죄 피해(Criminal Victimization)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안에게 범죄를 저지른 인종별 비율을 보면 흑인 27.5%, 백인 24.1%, 히스패닉 7%로 나타난다. 이 자료를 보면 흑인이나 백인이나 비슷한 비율로 아시안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의 인구분포가 백인 60%, 히스패닉 18%, 흑인 12%인 점을 감안해 인종별 인구비율로 분석하면 아시안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흑인이 백인이나 히스패닉보다 6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쉽게 말해서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백인이나 히스패닉 10명을 만나면 그 중 1명이 범죄를 가하고, 흑인 10명을 만나면 그 중 6명이 범죄를 가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2020년 코로나 유행 이후 흑인의 아시안 혐오 범죄 비율은 더 높아지고 있다.

편견을 넘어서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일리노이주와 뉴저지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 및 기여에 관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곧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안이 다른 주로 확산돼 아시안 혐오를 멈추는 평화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백인과 흑인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문제가 있을 때 외부에서 비난의 대상을 찾고, 인종주의를 덧씌우는 잘못을 반복해 왔다. 지금은 아시안이 피해자이지만, 우리부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에 근거한 현실적인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적이 드문 곳이나 위험 지역, 야간 외출 등을 자제하고, 혐오 범죄를 당했을 때는 범행 현장에서 신속하게 탈출해 911에 신고해야 한다. 영어로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 한국어 통역을 요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