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를 쓰고 소금 얻으러 가는 꼬마의 모습 ©구리넷

연필을 깎다가 문득

연필을 깎다 문득
옛일을 떠올린다

일기장에 눌러 쓴
삐뚤빼뚤한 글자들 눈에 선하다
아직도 여기 불쑥 저기 불쑥
콩콩대며 뛰어다니는 글자들

어디서 향나무 향 맑은 바람이 분다
바람에 절로 넘어가는 일기장

키를 쓰고 소금 받으러 가는 꼬마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새까매진 손등
참외서리 갔다가 풀밭에 잃어버린 신발 한 짝

어디서 나를 기다리기나 할까
여기저기 추억 속 헤매다
훌쩍 자정을 넘는다

▶ 작가의 말
요즈음은 연필을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전자화 시대가 되어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내고 영상통화를 하며, 문서나 서류도 사진을 찍어 보관합니다. 어쩌다 글씨를 쓸 일이 있어도 간편한 볼펜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칼로 나무 연필을 깎아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며 글씨를 꾹꾹 눌러 쓰곤 했습니다.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 일부러 향나무 연필을 깎아서 글을 써 보곤 합니다. 그러면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르지요. 추억의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향나무 맑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줌을 싸서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러 가던 내 어린 시절의 꼬마는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손이 까맣게 때가 묻었고, 참외서리 갔다가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일도 생각이 납니다.
아, 그리운 그 시절의 추억들은 어디서 날 기다리기나 할까요? 여기 저기 추억 속을 헤매다보면 훌쩍 자정을 넘길 때가 있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Ymmh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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