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밀려온 바지락 껍질에 새겨진 물결무늬 ©KOREAN LIFE

무늬

해변에 밀려온 바지락 껍질
물결 바람 번갈아 나명들명
안았다 풀어놓은 물결무늬, 바람무늬

허공을 빙글 돌아 떨어지는 낙엽
햇빛과 바람 숨결 나명들명
쓰다듬은 하늘무늬, 바람무늬

물끄러미 바라보는 물 속 내 얼굴
밭고랑 논두렁 흘러가는 실개천
긴 세월 되어 내 얼굴에 그려놓은
웃음무늬, 눈물무늬, 쟁기질 무늬

시인의 말

바다와 물결은 수평적 공간이고, 하늘과 땅은 수직적 공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융합적인 공간입니다.
바지락은 곁으로 밀려오고, 낙엽은 위에서 떨어집니다. 바지락에도 나뭇잎에도 무늬가 있습니다.
바지락 무늬는 물결무늬 바람무늬고, 낙엽 무늬는 햇빛무늬 바람무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사물에 무늬로 흔적을 남기고, 수평 이동이나 수직이동의 배후 손길인가 봅니다.
웃음무늬, 눈물무늬, 쟁기질무늬로 표현된 얼굴무늬는 지나온 삶의 흔적입니다.
인생이란 웃음과 눈물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 무늬이고, 삶은 시간의 밭을 경작하는 부단한 쟁기질의 흔적입니다.
우리 얼굴의 주름살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그려 놓은 무늬입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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