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을까봐 두려워 상대방의 헌신을 요구하고 확인하는지 돌아보자. ©pixel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분노 버튼
나의 내면에 여러 모양으로 자리한 분노의 뿌리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기 내면의 분노 버튼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으로 인해 분노 버튼이 눌러지면 아주 작고 사소한 문제로도 감정이 폭발할 수 있다. 따라서 분노 조절 훈련의 첫 단계는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분노 버튼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달리 민감하거나 쉽게 상처받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Commitment, 즉 상대방이 이 관계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분노이다.

사랑의 증거, 헌신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이상적인 배우자감으로 꼽는 것이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한번은, 나만 사랑해주는 남자를 찾는다는 자매에게 어떤 형제가 “차라리 그냥 강아지를 키워!”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자매에게는 헌신이 매우 중요한 가치였던 반면, 다른 형제에게는 두려운 족쇄이자 구속을 의미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 각자에게는 ‘헌신’에 대한 서로 다른 이슈가 자리하고 있었다.
연애를 하는 커플들은 자신의 여친이나 남친이 다른 사람과 영화를 보러 가거나, 남사친 또는 여사친과 너무 친하게 지낸다든가 하는 문제로 종종 다툰다. 다른 사람을 보며 자주 웃는 것도 맘에 안 들고, 다른 일을 하느라 내 전화를 빨리 안 받거나 카톡 답장이 늦어지는 것도 시비거리다. 모두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에 얼마나 집중하고 헌신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 확인이 안 되면 엄청나게 화가 난다.
요즘 결혼서약서에는 ‘평생 몸매를 S라인으로 가꾸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평생 서로의 곁을 지키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은 이미 한물 간 주례사쯤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하는 배우자가 내가 늙어 뱃살이 축 쳐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여전히 날 사랑해줄까 확인하고 싶다.
헌신의 문제는 결혼 후에도 계속 갈등의 원인이 된다. 아내들은 남편이 남의 편인지 내 편인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또한 요즘 부부들이 각자의 수입을 따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것이 부부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계좌를 가지고 있으면서, 공동 생활비 계좌를 열어 각자 일정한 금액을 내고 생활을 꾸려간다. 나머지 돈은 어떻게 쓰든 서로 간섭하지 않는 자유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 미리 깔끔하게 정리해두는 것인가 싶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런 문제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헌신’에 대한 이슈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버림받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버림받는 두려움
상담실을 찾아온 C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뭐가 고민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늘 서운했다. 결혼 전에는 과묵해서 멋있어 보이던 남편이 이제는 답답하고 짜증났다.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자신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남편의 의도는 알겠지만, 남편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소리지르고 울며 화를 냈다. 그러나 남편은 C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를 폭발하게 만드는 분노의 뿌리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C가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혼자 남겨진 아이는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이 길러주셨지만 아이에게는 버림받은 느낌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쉽게 버림받을 수 있을 거라는 두려움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남편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어떻게든 남편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부정적인 관심이 무관심보다는 더 나았기 때문이다.

아픔의 치유
분노의 뿌리는 과거의 아픔일 때가 많다. 이 아픔에 대한 이해와 치유가 없으면 자신이 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나에게 커다란 아픔을 준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다른 좋은 기억들과 고마운 사람들을 쉽게 간과한다. 그러고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누군가 바빠서 연락이 늦어지면 또 다시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혼자 분노하고 절망한다.
또한 내 안에 뿌리박힌 기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과 진심을 계속 의심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감정에 충실하느라 다른 수많은 증거들은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번엔 나를 싫어하거나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누군가를 찾느라 내 곁에 늘 함께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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