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며 진짜 나와 너로 살아가자. ©maxmovie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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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된 분노
섣부른 분노의 표출은 주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힌다.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문제를 더 키우거나 관계를 한방에 끝장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화가 나도 웬만하면 참고 조심한다. 속으로 삭이고 기도로 ‘푸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그런데 이렇게 속으로 삭이고 참은 화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분노가 내 안으로 스며들 때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
분노를 계속 억제하다보면 강박증이 생기기도 한다. 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두려워 주변 환경을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상태로 유지하며 내 안에 있는 감정까지 정리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분노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면 무기력감이 오고, 이 무기력감은 우울증으로 깊어지기도 한다. 분노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의 내면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잊기 위해 술이나 도박 등으로 도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내재된 분노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사례이다.

착한 아이 강박증
C양은 어릴 때 극도로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에서 짜증을 내거나 울거나 화를 내는 것은 중대한 처벌 사유가 되었다.
싱글맘으로 혼자 자녀들을 키우며 심신이 지친 어머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던 C양은 정말 착한 아이로 컸다. 그리고 자신의 절망감, 분노, 슬픔, 외로움 등의 부정적 감정들은 드러내서는 안 되는 비밀이 되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그런 감정을 숨기고 있는 자신이 ‘나쁜 아이’로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상담소를 찾은 그녀는 ‘쓸데없는 일’에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있으면 끊임없이 옷장을 정리했다. 운전을 하다가 짜증이 나거나 속으로 욕을 하면, 가던 볼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와 벽장 청소를 시작했다. 자신의 나쁜 속마음을 감춘 자신에게 벌주는 마음으로 계속 청소를 했던 것이다.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울어도 내버려 두었고, 일을 방해하는 아이에게 화가 나면 그 죄책감으로 다시 청소를 했다. 그러는 사이 정작 자신이 처리해야 할 삶의 중요한 일들은 뒤로 밀린 채 남아 있었다.

억제된 감정, 신체적 질병
내재된 분노의 부정적인 결과는 정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한국문화에서는 차라리 몸이 아픈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작게는 두통에서 시작해서 여러 가지 원인 모를 통증, 심장질환, 고혈압, 신경성 질환, 소화계 질환 등등, 내면에 억눌린 감정들이 다양한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크고 작은 병이 없는 목회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많은 경우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며, 희로애락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억누르며 살아야 하는 환경 또한 이런 신체적 질병에 큰 몫을 담당한다.
건강한 분노 표현
그렇다면 분노는 혼자 속으로만 참고 삭이고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적절하게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물론, 화가 난다고 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섣부른 분노의 표출은 관계에 금이 가게 하거나 관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대로, 지혜로운 분노의 표현은 사람과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 앞에서 늘 좋은 말, 예쁜 말만 하는 사람은 어쩌면 딱 그만큼만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면 내가 속상할 때 힘든 일, 화나는 일, 섭섭한 일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싸우고 삐지고 화내다가 또 화해하고 용서하며 놀았던 어릴 적 친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진짜 나’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며, 진실한 나를 보여주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주는 탄탄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만약 C양에게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었다면 그녀의 어머니는 ‘착하기만 한 딸’ 대신에 ‘진짜 딸’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지혜로운 분노의 표현은 ‘진짜 나’를 드러내는 용기 있는 과정 중 하나이다. 또한 건강한 분노의 표현은 ‘진짜 너’를 만나는 길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