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고 컴프레셔의 릴레이를 분리한다. ©스마일 엘리

직접 만든 김치 냉장고
저희집 차고에는 냉동고가 있습니다. 김치 냉장고가 갖고 싶었던 저는 김치 냉장고를 저렴하게 직접 만들어 사용했답니다. 바로 저렴이 냉동고에 온도조절기를 달아 김치 냉장고처럼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김치 냉장고가 2,000불~3,000불 정도 하기 때문에 해외에 사는 한인들은 200불~300불짜리 냉동고와 30불짜리 온도조절기로 간단하게 김치 냉장고를 만들어 쓰시는 분들이 많답니다. 이미 써보신 분들의 후기에 의하면 다들 대만족이라고 하셔서 저도 그렇게 만들긴 했는데, 사실 저희집에는 김치 냉장고가 필요할 만큼의 김치가 없답니다.ㅎㅎㅎ
종가집 김치 한 통씩 사다 먹는 게 전부인데다가, 식재료를 저장해 놓고 먹지도 않거든요. 보통 일주일치 식단을 짜서 그 식단대로 장을 봐서 먹기 때문에 일주일이면 남는 식재료 없이 거의 다 먹게 되고, 게다가 요즘은 밀 키트(meal kit)를 주문해 먹으니 세상 편하고 좋아요. 그래서 냉장고도 텅텅 비어 있는데, 그 외에 김치 냉장고 기능이 딱히 필요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한국의 친정엄마에게 공수받은 고춧가루, 콩가루, 미숫가루 등을 저장해둘 냉동고가 더 필요해서 결국 온도조절기를 떼어내고 다시 냉동고로 원상복귀시켰습니다.

냉동고 고장
그런데 이 냉동고를 1년 반 전에 구입했는데, 잦은 이사로 인해 옥체가 상하셨는지 처음엔 시름시름 고드름이 맺히더니 고드름이 점점 녹아 내리다가 마침내 냉동 기능을 상실하고 냉장고가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다음날은 아예 냉기마저 잃어버리고, 더운 차고에서 보온 기능을 추가 탑재한 온장고가 되어 있더군요. ㅜ.ㅜ
미국 생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거 고장났다고 수리기사 막~ 부를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일단 불렀다 하면 100불은 우습게 깨지고요.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어떤 사람은 냉동고 수리비로 200불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그 글을 보니, ‘250불 주고 산 냉동고를 고치는데 200불을 낼 바에야 그냥 새 것을 사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냉동고 새로 사기 전에 고장난 냉동고 고치는 방법이나 한번 찾아볼까?’ 하는 생각에 유투브를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유투브 과외를 좀 받아보니, ‘냉동고가 생각보다 단순하네~! 까짓거 내가 고쳐도 되겠는 걸?’ 하는 오만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냉동고 고장의 원인은 대부분 세 가지래요. 저는 수리기사가 아니니까 냉장고, 냉동고에 대해서는 1도 모르지만, 어쨌든 제일 흔한 고장은 ‘릴레이(relay)’라는 냉동고를 가동하는 모터인 컴프레셔 옆에 있는 작은 연결 기구예요. 냉동고 고장의 경우 대부분 이걸 교체하면 해결된다는 유투버 선생님들의 수업을 듣고, 저도 야심차게 저희집 냉동고 뒷부분을 뜯어내고 그 릴레이를 살펴봤습니다. 이걸 교체해서 멈췄던 컴프레셔가 돌아가면 성공이에요. 저희집 냉동고의 컴프레셔는 완전히 멈췄거든요. 그런데 릴레이를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컴프레셔가 안 돌아간다면 그건 컴프레셔 자체의 문제이고, 컴프레셔는 개인이 고칠 수 없으니 냉동고 회사에 직접 의뢰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그 릴레이 모델명을 검색해서 새 부품을 11불에 구입했습니다. 두근두근~ 과연 내가 이것을 고칠 수 있을 것인가?!?!
드디어 배송이 왔고, 릴레이 연결선을 하나씩 기존 릴레이와 비교해 가며 분리한 후 다시 끼웠습니다. 그리고 전원을 켰더니!!! 위이잉~~~ 꺄아아아악~!!! 컴프레셔가 돌았네, 돌았어~!!!!!!! 여러분, 제가 이걸 해내고 말았네요!!! 미국 살면서 정말 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날이었습니다. 진짜 하다하다 이젠 냉동고까지 고치게 되다니!!!

새 릴레이를 주문해서 직접 갈아 끼운다. ©스마일 엘리

너무나 벅차올라 웅장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방 냉동실에 임시로 대피시켰던 귀중한 고춧가루와 미숫가루 등을 다시 냉동고로 옮겨주고, 몇 번이고 냉동고를 열어 얼굴을 파묻고 그 시원한 냉기를 맞으며 가슴 벅찬 쾌감을 재탕, 삼탕하며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냉동고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게 물 한 병을 넣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자존감 하이(high)가 약 3~4일간 지속되다가 사그라들 때쯤, 냉동고 문을 열어보았는데 왠지 냉기가 좀 약해진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냉동고 제일 아래칸에 넣어둔 물병을 보니 물이 얼었다가 점점 녹고 있더라고요. ‘이거 뭔가 잘못 됐구나!!’ 싶었죠.

그래서 릴레이 판매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릴레이를 교체하니 멈췄던 컴프레셔가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얼음이 얼지 않는다. 혹시 릴레이가 불량일 가능성이 있느냐?”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왔습니다.
“컴프레셔가 작동했으면 릴레이는 이상이 없는 거고, 온도조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온도조절기와 연결되어 있는 스타터 릴레이(starter relay)를 교체해 보세요.”
‘그래, 내가 다 죽어가던 컴프레셔도 살렸는데, 스타터 릴레이 교체해서 온도조절기도 살려보지 뭐!!!’ 하는 자신감으로 또 다시 냉동고를 뜯고 스타터 릴레이를 분해한 뒤 모델명을 확인하고 주문을 했습니다. 비용은 약 30불 정도 하더라고요. 수리비가 200불이라는데 릴레이 2개 구입해서 40불로 고친다면 이거 완전 꿀이득!!!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냉동고 고친 여자
냉동고의 스타터 릴레이를 차근차근 하나씩 분리해내고, 새 스타터 릴레이를 다시 끼우고, 작동이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전원을 켰습니다.

온도조절기의 스타터 릴레이를 분리한다. ©스마일 엘리
새 스타터 릴레이를 주문해서 직접 갈아 끼운다. ©스마일 엘리

위이잉~ 하고 컴프레셔가 돌아가는 걸 보니 이번에도 제대로 연결한 것 같았어요!!! 아~ 뿌듯해!!!!! 내가 냉동고를 고치다니!!! ㅋㅋㅋ 다시 임시 대피시켰던 고춧가루와 미숫가루를 냉동고로 복귀시키고, 테스트용 물병도 새로 하나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시베리아 냉기를 기대하며 냉동고를 열었는데….. 으잉? @.@ 그냥 냉장고네요! 물병도 얼지 않았고. 뭐지? 그럼 스타터 릴레이의 문제가 아니었나??? 휴~~~ ㅠ.ㅠ ‘내가 해냈어! 내가 냉동고를 고쳤다구!!!’ 하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너무 컸던 탓인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냉장고를 보니 실망도 크더라고요.

그리고 대반전
그렇게 한참 동안 혼자 실의에 빠진 채 넋을 놓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해서 왔습니다. 냉동고를 내 힘으로 고칠 수 있을 줄 알고 온갖 부품까지 구입해서 고쳤는데 결국 작동이 안 되고,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내가 너무 슬프다고 넋두리를 좀 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내가 한 번 볼게.” 하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클립을 찾더라고요. 그러고는 제가 연결했던 스타터 릴레이 선들 사이에 그 클립을 끼우고는, “이제 전원을 연결해 봐!” 하길래 전원 코드를 꼽는 순간,
“펑~!!! 파바바박!!!” 불꽃이 튀더라고요.
“뭔 짓을 한 거야?!?!?!” 하며 다그치니까 남편은 태연하게,
“아, 이게 문제가 아니었나보네! 이제 냉동고는 더 이상 고칠 수도 없게 되었네!!!”
뭐……? 뭐죠? 이 사람?!?!?!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미친니은처럼 막 웃었어요.ㅎㅎㅎㅎㅎ
아니, 이렇게 쉽게 보내 버릴 걸, 나는 왜 몇 시간 동안 유투브 과외를 받고, 몇 시간 동안 차고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하며 냉동고를 뜯어내고, 부품을 분해하고, 새 부품을 구입하고, 그걸 다시 조립하며 난리 부르스를 췄던 걸까요!!! 남편 눈에도 제가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던지 저 보고 왜 그렇게 웃냐길래,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게 너무 허무해서 웃는다고 하니까,
“비록 못 고쳤어도 어쨌든 공부가 됐잖아? 냉동고 작동 원리도 배웠고, 어떤 부품이 들어가는지도 알게 됐고, 어떻게 고치는지도 알게 됐으니까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아니, 이게 방금 냉동고 하나 해 쳐드신 장본인이 할 소린가요? 해도 내가 할 소리지!!!
뭐, 그렇게 해서 결국은 250불짜리 냉동고를 수리비 200불 아끼려다 부품비에 플러스 새 냉동고 구입비 360불까지 더 쓰게 된 새드 엔딩 스토리였습니다. ㅜ.ㅜ

물론, 냉동고와 냉장고 작동 원리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 좋은 경험이 되긴 했고요, 대부분의 경우는 저 두 가지 부품만 교체하면 문제 없이 재작동이 된다고 하니, 여러분도 혹시 냉동고가 고장나면 꼭 직접 고쳐보세요. 부품 교체는 정말 간단했어요.
그리고 이번 일을 통해서 또 하나 배운 게 있죠. 아무것도 몰라서 공부한 놈은 냉동고의 반은 고쳤는데, 어설프게 아는 놈은 냉동고를 아예 골로 보내 버릴 수도 있다는 것! 고로, 어설프게 아는 놈보다는 1도 몰라도 공부하는 놈이 더 낫다는 것!
아, 그리고 아무래도 고장난 냉동고 요리조리 살펴보며 고쳐가는 마누라가 안타까워서 새 냉동고를 사주고픈 마음에 남편이 일부러 냉동고를 폭파시킨 것이 아닐까~??? 라며 긍정적인 확대해석을 해봅니다. 아하하하하하~ 그래야 제가 제 정신으로 살지 않겠어요? 아, 웃프다~ ㅠ.ㅠ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엘리네 미국 유아식> 저자. [email protected]